검색

구자선 수필가 - 외삼촌

가 -가 +

구자선
기사입력 2020-02-19

▲ 구자선 수필가    

외 삼 촌

 

보아뱀이 코끼리를 삼킨 모자를 보았다.
  아흔 다섯의 외삼촌이 돌아가셨다. 아들을 낳겠다고 줄줄이 낳은 딸이 여덟인 외삼촌은 막내아들까지 낳아 조상 뵐 면목을 만들고 돌아가셨다.

 

젊어서는 집밖으로 도는 날도 많아 외숙모 속을 무던히 썩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초상집엔 웃음소리도 간간이 들려왔다.

 

살아 있을 때 자주 뵌 적 없지만 돌아가신 후에야 그 얼굴을 가까이에서 뵐 수 있었다.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아랫배, 반듯하게 누운 외삼촌은 편안해 보였다. 찡그리거나 아쉬움 따위는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두 손 가지런히 내려놓고 누워 있다.


  젊어서는 호기부리고 무엇인가 해보겠다고 부지런히 움직이던 손과 발이 세상 떠나고서야 다 부질없다는 듯 내려놓았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 했던가. 그래도 철없이 분주한 시간이 있었기에 저리 많은 자손을 남기고 떠나는가 보다.


  한 때는 나도 이것만은 꼭 이루어야지, 이것만은 꼭 해내고 말리라 다짐하고 맹세했던 시간이 있었다.

어느 순간 내 몸을 내 맘대로 할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때 욕심도 욕망도 남의 일처럼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내가 건강하고 패기 넘치는 삶을 살고 있다면 이런 쉼이 찾아 왔을까? 백 세 시대에 조금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 엄마의 표정처럼 순리를 받아들이고 있다.


  엄마는 담담하다. “다 그렇게 한 세상 왔다 가는 겨.” 라고 말한다. 팔순을 넘기면서 이제는 세상 순리를 안다는 듯 초연하다. 삼베 저고리를 곱게 차려입고 코가 긴 버선을 신은 외삼촌은 이제 떠날 차비를 마친 것 같다. 몸이 한없이 작아 보인다.

 

어쩌면 멀지 않은 날 우리 엄마도 저렇게 꽁꽁 싸매지고 덮여서 먼 길 떠나겠지. 안쓰럽고 애잔하다. 아니 어쩌면 나도 저곳에 저리 누울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니 인연의 끈들이 다만 고마울 뿐이다. 가만히 엄마의 늙은 손을 잡는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손수건을 움켜쥐는 모습이 더없이 쓸쓸하다.


  이제 육신을 벗어버리고 훌훌 떠나기를 기도한다. 처음 우리가 왔던 것처럼 떠날 때도 말없이 빈손 버선발로 홀연히 떠나기를 기도한다. 다음 생에서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만나더라도 내 가족이었던 시간, 서로를 응원하고 사랑했던 것처럼 그렇게 인연이 되기를 기도한다.

 

이제는 잠시 쉬어도 좋을 시간, 부디 편안한 곳에서 안식하기를 기도한다. 바람이 참 따스하다. 봄빛이 완연한 걸 보니 외삼촌도 편안하신가 보다. 보아 뱀이 코끼리를 삼킨 것처럼 어느 양지 바른 산 밑에 멋진 신사의 모자가 만들어 지겠지. 백구두에 하얀 양복을 차려 입고 하얀 중절모를 높이 치켜들며 환하게 웃어주는 외삼촌에게 두 손 흔들며 마지막 인사를 한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band naver URL복사
URL 복사
x

PC버전 맨위로

Copyright ⓒ 안산신문. All rights reserved.